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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5분] 장자 ㅣ 양생주, 죽음과 삶에 초연해야 한다

Hello333 2023. 5. 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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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양생주

[사유의5분] 장자 ㅣ 양생주, 죽음과 삶에 초연해야 한다


‘양생주’는 ‘천연한 그대로의 정신’을 말합니다. 
장자의 양생주는 삶의 온전함을 지키기 위해 자연의 순리를 지키고 따르는 것을 강조한 말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정해져 있으나 우리의 지식은 한정된 것이 없습니다.  한정이 있는 것으로써 한정이 없는 것을 따르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위험한 줄 알면서 자꾸 욕망을 가진다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입니다. . 


장자(내편) 제3편 양생주 
01 앎을 버려야 참된 삶을 누릴 수 있다

우리의 삶에는 한계가 있으나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삶을 가지고 한계가 없는 앎을 뒤쫓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그런데도 앎을 추구하는 자가 있다면 위태로울 따름이다.



장자(내편) 제3편 양생주 
02 선과 악의 중간 바르고 자연스러운 길을 가라

선을 행함에 있어서는 명성을 가까이 하지 말고,
악을 행함에 있어서는 형벌을 가까이 하지 말며,
중정(中正)을 따름을 법도로 삼는다면 몸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고,
어버이를 부양할 수 있을 것이며,
타고난 자기 수명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장자(내편) 제3편 양생주 
03 자기도 대상도 없이 자연의 원리를 따라라


한 백정이 문혜왕을 위해 소를 잡았다.
 그의 손이 닿는 곳이나, 어깨를 기대는 곳 이나, 발로 밟는 곳이나, 무릎으로 누르는 곳에서는 뼈와 살이 떨어졌다. 칼이 지 날 때마다 설겅설겅 소리가 나는데 모두가 음률에 들어맞았다. 
그의 동작은 상림 의 춤과 같았으며, 그의 절도는 경수의 장단과도 같았다.


문혜왕이 말했다.
"훌륭하다. 어떻게 하여 재주가 이런 경지에까지 이를 수가 있는가?"
백정이 칼을 놓고 대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로 재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잡았을 때 는 보이는 것이 모두 소였습니다. 
그러나 삼 년 뒤에는 완전한 소가 보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정신으로 소를 대할 뿐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감각의 작 용은 멈추고 정신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천연의 조리를 따라 틈과 틈을 가르 고, 큰 구멍을 따라 칼을 찌릅니다. 
소의 본래 구조에 따라 칼을 쓰게 되어 힘줄이 나 질긴 근육에 칼이 닿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니 큰 뼈에 칼이 닿는 일도 없 습니다.
훌륭한 백정은 일년마다 칼을 바꾸는데 그 이유는 살을 자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쓰는 칼은 십구 년이 되었으며, 그 사이 잡은 소는 수천 마리에 이릅니다. 
그러나 아직도 칼날은 숫돌에 새로 간 것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으나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넣기 때문에 칼의 움직임은 언제나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십구년이 지나도 칼날은 새로 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뼈와 살이 엉긴 곳은 저로서도 다루기 어렵습니다. 
조심조심하면서 눈 은 그곳을 주목하고 동작을 늦추며 칼을 매우 미세하게 움직입니다. 
그러면 후두둑 살과 뼈가 떨어져 흙이 땅 위에 쌓이듯 쌓입니다. 
그렇게 되면 칼을 들고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흡족한 기분에 젖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잘 닦아 잘 보관해 둡니다.”

문혜왕이 말했다.
"훌륭하다! 
나는 백정의 말을 듣고서 삶을 기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장자(내편) 제3편 양생주 
04   분수대로 자연을 따라 살아라

공문헌이 우사를 보고 놀라며 말했다.
"어찌된 일인가? 
어째서 한 발을 잘렸는가? 
하늘이 그랬는가? 
사람이 그랬는가?"

우사가 말했다.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지 사람이 한 일은 아닙니다. 
하늘이 나를 만들 때 외발이 되도록 정한 것입니다. 
사람의 모습은 두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 외발도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지 사람의 짓이 아닌 것입니다. 
못가에 사는 꿩은 열 발자국을 걸어야 한 번 쪼을 모이를 만나고, 백 발자국을 걸어야 한 번 마실 물을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갇혀 길러지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우리 속에서 는 신경을 쓰며 고생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 곳에 사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 니다.”



장자(내편) 제3편 양생주 
05. 죽음과 삶에 초연해야 한다.

노담이 죽자, 진실이 가서 세 번 곡하고는 나왔다. 
그의 제자가 물었다.
"돌아가신 분은 선생님의 친구가 아닙니까?"
“그래, 친구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문상을 해도 되는 것입니까?"
"그래, 처음에는 나도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문상을 하면서 보니 노인들은 자기 자식을 잃은 것처럼 곡을 하고, 젊은이들은 그의 어버이를 여읜 것처럼 곡을 했다.
그들이 그의 죽음에 슬퍼하는 까닭은 반드시 조상을 하여 달라고 부탁하지는 않 았을지라도 조상을 하도록 만들고, 
반드시 곡을 해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곡을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을 어기고 인정을 배반한 것이며 그의 분수를 잊은 것이다.
그런 것을 옛날에는 자연을 어긴 죄악이라 말했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가 태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며, 
그 사람이 죽은 것 또한 죽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윤회하는 때에 안주하고, 주어진 운명에 따르면 슬픔이나 즐거움이 파고들 수 없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것을 하늘의 속박에서의 벗어나는 것이라 불렀었다."



장자(내편) 제3편 양생주
06 자연에 의해 얻어지는 것은 영원하다

손가락으로 땔나무를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으나
불을 널리 옮기는 데에는 그 한계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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